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키노토리시마 암초 (문단 편집) == 역사 == 원래 이름은 16세기 무렵 [[스페인]]의 교역선이 돛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파레세 벨라(Parece Vela)'였다.[* 말 그대로, [[스페인어]]로 '돛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때에는 암초가 아니라 약 4 km가량 걸쳐 퍼진 거대한 [[환초]]대였다. 일본은 1888년에 이곳의 존재를 직접 살폈고, 1920년대에 들어 측량과 관측 작업을 시작. 그리고 1931년에 내무성 고시 제163호에 의해 오키노토리시마로 명명되고, 도쿄부 오가사와라 시청에 편입되었다. 이후 군사기지화를 위해 [[등대]] 등을 세우며 실질 통치에 들어갔지만,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개발이 멈췄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패배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미국]]의 관리 아래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후 [[오가사와라 제도]]의 일본 반환과 함께 다시 일본 관할이 되었다. [[파일:external/www.kjclub.com/Tayama1952PVmap.gif]] 1930년대의 모습. 보다시피 가장 왼쪽 위와 그 오른쪽의 기타코지마(北小島) 및 히가시코지마(東小島)을 빼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방치돼 있는 사이에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바위들이 하나둘씩 잠기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개가 물에 잠기거나 물에 쓸려나가 실질적으로 남은 것은 수면 위로 2 m가량 솟아오른 암초 두 곳뿐이다. || [[파일:北小島.jpg|width=100%]] || || 1987년 콘크리트 보강공사 직전 기타코섬 사진. || || [[파일:external/www.kjclub.com/anohi101104_l.jpg|width=50%]] || || [[파일:attachment/1396248564493.jpg|width=50%]] || || 암초 주변에 콘크리트를 두르는 모습. || || [[파일:external/www.dokdocenter.org/1280909301-62.jpg|width=100%]] || || 현재. 이 중앙의 사람 몸통만 한 바위가 '''일본이 섬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 이에 일본은 암초가 사라지는 것을 막으러 300억 엔[* 2019년 환율 기준으로 '''3,265억 7,400만 원''' 가량.]을 쏟아부으며 남은 암초를 보강하는 작업에 들어갔는데 콘크리트뿐만 아니라 일부는 티타늄 합금으로 도금했다. 이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대만]] 등지에서 찾아와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이들 국가는 이를 시도한 적도 있다. 또한 자연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산호초를 심었고, 1988년에는 근처에 해양과학기술 센터를 세웠다. 2008년 일본은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청원서를 내 오키노토리시마를 섬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기각당했다. 2018년부터 [[도쿄대학]]과 일본 [[국토교통성]]이 수몰을 막기 위한 공동연구에 들어간다고 한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4&sid2=235&oid=469&aid=000033166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